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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심해아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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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찾는 바닷가가 있다.
항구도시에 살다 보니 바다 보는 걸
마음먹고 계획잡아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덕에자주 찾게 된다.
얼마전 봄날, 등대로 이어진 방파제길을 걷다가
난간에 새겨진 문구 하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形影不离.....형영불이( 형체와 그림자가 떨어질 수 없다.)
서로의 관계가 너무도 밀접하여 항상 함께 한다는 뜻이다.

어느 연인이 남겨 놓고 갔을 그 문구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심해아귀의 일생이 떠올랐다.
심해... 태양광선이 도달하지 않는 곳.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심해아귀의 사랑이야기.

본 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심해아귀 암컷의 모습은
상당히 무시무시하다. 괴물의 형상이라 봐야 할 정도.
게다가 그 크기 또한 50cm 가까이라 심약한 사람들은
기겁을 할만한 모양새를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수컷은 5~10cm 내외의 조그마한 크기에다
모습도 평범해서 처음 이 둘이 같은 아귀의 암수인지 조차도
몰라서 학계에서는 각기 다른 종으로 분류를 하기도 했었다.

심해아귀 수컷에게 있어서 성공적 인생이란
암컷 몸에 달라붙어 하나의 기관처럼 진화해서는
남은 일생을 암컷의 부속기관으로 살아가며 정자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달라붙는 기생이 아니다.
동화기생이라는 과정이 진행된다는 얘기인데
이게 끝나고 나면 언뜻보면 수컷은 조금 툭 튀어나온
암컷의 몸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존재감이란 없고 자율의지도 없으며 오로지
산란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긴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처음 암컷 몸에 달라붙어 일체화된 모습이 발견
되었을때 사람들은 원래 그리 생긴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후 연구에 의해 암컷 옆구리에 툭 튀어나온
그것이 수컷이 달라붙어 일체화 형태로 진화된 형태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심해에서 합체전 수컷의 눈과 기관은
오로지 암컷의 발견에만 집중되어 있다.
칠흑같은 심해에서 이마에 초롱불을 붙인듯한 암컷의 발광체를
발견하면 수컷은 재빨리 접근해서 암컷의 아랫배를 물고 매달린다.

그 넓은 바다속에서 수컷 아귀와 암컷 아귀가 만나게 될 확률은
너무도 희박하다. 일생을 짝짓기 한 번 못한 채 잡아 먹히거나
자연사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수컷에게 암컷의 존재 발견은
천재일우의 기회이며 그 즉시 달라붙어 임무를 수행해야 할 
절대절명의 순간인 것이다.
그렇게 배를 물고 매달린채로오랜 시간이 지나면
참으로 오묘한 생태계의 신비, 한 몸으로의 동화기생이 시작된다.
한 몸이 되는 과정이 완료되면, 이제 모든 지배권은 암컷이 갖게 되는데
오로지 수컷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암컷에게서 영양분을
섭취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뿐.

이 동화의 과정에서 수컷은 천천히 암컷 몸의 부속기관...더 정확히는
정자를 제공하는 고환 정도의 역할밖에 이제는 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수컷의 모든 기관은 퇴화되고 입은 차츰 뒤로 이동해
암컷의 아가미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로 남게 된다.
이윽고 알을 낳을 시기가 오면
수컷이 뭔가 역할을 해야 하는 영광의 순간이 오는데
이때 마저도 모든 결정은 암컷이 한다.
암컷이 자신의 성 호르몬을 분비해서 자신에게 기생하고 있는
수컷을 조종하는데 이미 자율의지가 없는 수컷은
암컷이 이끄는대로 사정을 하며 그 임무를 다 하는 것이다.
시간이 또 다시 흘러 암컷이 죽는 순간이 오면,
당연히 수컷도 따라 죽게 된다.



인간의 가치관으로 생태계의 섭리를 재단해서
바라본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수컷아귀의 일생은 어쩐지 짠하다.
형영불이...심해아귀의 사랑.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중
He loves you deep inside 란 곡이 있다.
가사는 모르겠지만 제목에서 어쩐지...
심해아귀 수컷에게 어울리는 헌정곡이란 생각을 했다.








Rachael Yamagata - He Loves You Deep In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