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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아들 이야기 II












오래전,
아들이 기저귀를 차던 시절의 어느날,
토요일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애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데리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 같아서
책상위에 눕혀놓고 갈아 채우며 생각을 했다.


지금 이렇게 작은 아이가
언제 다 커서 성인이 될 것이며
그 때까지 내가 과연 제대로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내 등에 업혀 자라던 아이가
시간이 잠깐 흐른 언제부터 인가는
내 곁에 서서 손을 잡아주면 걷기 시작했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키가 좀 커져서 부터는
이제 내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시키고
하나하나 내가 조종을 하면 따라주던
인형같았던 시기는 지났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의견을 들어봐야 했고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눈치도 살펴야 하는
조그마한 인격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나와 대등해진 키로 자라나서 내 곁에
서 있는 아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는 참 묘하다.
여전히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사회속에서 학교란 조직속에서,
아프고 힘들고 울고 웃으며
하나씩 깨쳐 나가며 사회적 존재로
차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제 품안의 자식을 넘어서
같이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의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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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 반 정도의 시간동안
아들은 지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중3을 보내던 8월의 마지막 날,
아들은 집에 들어 오지를 않았다.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감행한 가출,
일탈을 한 아이들 무리를 하룻만에
찾아낸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조용히 달랜후배를 좀 채워 준 다음
모두 차에 태우고 학교로 향했다.
돌아가는 차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디선가 봤던 문구였던
'아프면서 커는 아이들'이 바로 거기 있었다.
이렇게 아프도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자괴감은
그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편부슬하에서 유년과 사춘기를 보낸
아들의 정서적 불균형과 상처받기
쉬웠을 여린 영혼을 나는 그저 경제적 뒷바라지만
해대며 간과했던 것이었다.
한동안 잊었던 불면의 밤을 보내야했다.


가출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건 시발점에 불과했다.
이후 이어지는 수차례의 교칙위반과
담임선생님의 학부모 면담요청에
학교에 불려가길 여러번.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참으로 힘든 시간들 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동안 내가 안도를 했던 사실 하나는
너무 당연해서 보통의 부모들에겐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집단 따돌림이나 약한 아이들을 힘으로 억누르는
따위의 폭력과 관계된 사안들이 일절 없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희망을 찾았기에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자위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사실 또 하나,
그 긴 시간동안 내 눈엔 너무도 잘 보였다.
아들의 본성 저 바닥을 흐르는
아기의 속살같이 여리고 善한 마음새를.
그것이 나에겐 구원의 빛같았으며
희망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긴 기다림이었지만
이제 폭풍우는 거의 가라 앉았다.
내가 간곡히 부탁했던 몇몇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단 사실과 아이가 스스로
발휘한 자정능력이 나는 정말 대견스러웠다.


열 여덟 고2,
힘든 시간이 또 다가올 것이다.
주말밤에 모처럼 시간을 같이 가졌고
일상의 가벼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못마신다고 너스레를 떠는 아들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마셔 봤다는거 다 안다 이 놈아

한 잔 마시고 달아오른 얼굴로
술술 풀어놓는 얘기들을 듣는 시간은 행복했고
아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곧고 정직한 심지와 그 선함을 다시 확인한 나는흐뭇했다.


우린 잘 해낼 것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
널 믿는다.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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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Oscar - My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