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화된 선입관을 깨게 된 계기
처음 영화를 접하게 되는건 TV를 통해서였다.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양 방송국의 주말영화를 어린시절
손꼽아 기다려가며 봤던 기억이 난다.
뭐든 그렇듯..처음 접하게 되는건 그 느낌이 오랫동안 남아있나보다.
국민학교 1학년땐가..그 전인가... 제임스코번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전격프론트 고고 작전" 인가. 제목도 가물가물. 제목에서 풍기듯 제임스코번은 첩보원같은걸로 나왔고 그 당시 울나라 문화환경을 감안할때 SF가 가미된 첩보영화는 어린 동심을 한껏 뒤흔들어 놓았었다. 레이져같은게 나가는 총. 우주복같은 회색의 미끈거리는 옷을 입은 요원들...
가슴 두근거리며 잔뜩 들뜬체로 밤늦게 보고 앉았었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는 장면은 너무나 가슴 아파서....
어린 마음에 한동안 그 주인공이 불쌍해서 가슴 시려했었다.
그게....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화인듯.
그 주인공 이름과 제목을 아직도 기억하는 내가 조금 대견스럽기도...
국민학교 1학년.
난 처음으로 극장이란곳엘 가보게 된다. 단체 관람이었다. 제목은 '성웅 이순신'
내용 하나도 생각 안나고 단지 생각나는건 이순신장군이 고문받는 장면. 무릎꿇고 앉아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괴로워하는 장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 극장안이 울음바다가 되었었다.
나도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훌쩍거렸던기억이 난다. 당시 관람료는..50원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집에 놀러온 막내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내가 처음 접했던 그 극장엘 다시 한번 가게 된다.
마산극장.... 지금은 없어졌다. 훗날 이 극장은 나중에 2본동시 상영 전문관으로 거듭났고 고등학교 시절 내 여가시간의
꽤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냈다. 탤런트 남성남, 아니다...남성남은 코메디언이고 (남철 남성남 ^^)
남성훈. 알 사람은 알거다. 그 옛날 수사반장에서 형사로 나왔던.. 그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무협영화.
내 기억에 남아있는 3번째로 오래된 영화이다.
배경은 중국인지 조선시댄지 애매모호... 머리스타일로 봐선 중국쪽에 가까웠었던듯 하다.
불사신처럼 상대무리속을 칼 한자루로 휘저으며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영화였는데....
그 당시 내 수준을 감안하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두손을 꼭 쥐고 봤어야 될 상황이었는데도, 왜그리도 재미가 없었던지...
우리나라 영화는 왜이래....?하는 생각이 들게 해준 영화였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옆으로 많이 흘렀다. 지금부터가 원래 내용이다.
주말밤마다 하는 영화를 보며 알게 모르게 주연 배우들의 더빙을 맡는 성우들의 목소리에 차츰 익숙해졌다. 별 불편없이
불만없이 인지하지도 못하고 지나다 어느날엔가.. (고등학교때였지 싶다)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바뀌고 주인공이 바뀌어도 늘 같은 목소리. 같은 억양 같은 말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엔 어느정도 극장엘 다니기 시작하던 때였고 보니 원어로 들었을때 느껴지는 그 현실감을
못느끼게 하는 더빙이 아주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주연배우의 원래 음색, 말투, 숨소리 그런것까지도 챙기기 시작하게 된거다.
더빙된 영화를 싫어하고 낮게보는 경향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원어로 하면 알아 듣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야.
"영화는 원어로 듣고 불편하더라도 자막으로 나와야 해 !!"
이른바 고정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한거다.
그 고정관념이란걸 깨뜨리게 되는 일이 발생한건 5-6년 쯤 전인것 같다.
비디오방엘 갔다. 신작비디오코너를 서성이다 '치킨런'을 발견했다.
5개가 준비되어 있던데 하나가 남아있어 이게 웬떡이냐 싶어 재빨리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저 손님...이건 더빙처리 된건데요? 괜찮겠습니까? "
"예? "
"어린이용으로 더빙된게 2개 있는게 그중한갤 들고오셨네요"
"음.............그냥 보죠 뭐. 달랑하나 남았으니 뭐.."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찝찝하고 개운찮은 맘으로 집으로 왔다.
어쨋건 플레이되고...자세잡고 보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며....
나의 정형화된 고정관념이 새로운 재미를 놓치게 할 수 있었단 사실을 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잘 만들어진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만약 자막처리 된걸 본다면?
난 자막 따라 쫒아 다니느라 화면의 섬세한 구성과 애니메이션의 미세한 움직임과 디테일을 많이 놓쳤을 것이다.
자막처리된걸 보니.... 너무도 너무도, 편안했다.
귀는 그냥 열어두면 되고 눈은 부지런히 화면 구석구석을 훓었다.
감탄을 하며 재밌어하며. 내용은 내용대로 다 파악이 되었고.
피땀흘려 만들었을 제작진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만큼 난 한컷한컷을 화면 구석구석까지 잘 볼 수 있었다.
전혀 기대안한 경험과 기쁨을 맛본거지. 일반영화는 몰라도 애니메이션 만큼은 자막처리된걸 보면
색다른 재미가 배가 되는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정형화된 고정관념이란 틀속에 있음으로써 또한 내가 놓치고
잃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곳 까지 생각이 미쳤다.
비단...영화 뿐만이 아니겠지?